詩읽기·책읽기

금서禁書를 쓰다/나호열

섬지기__황희순 2015. 9. 28. 14:03

 

 

 

금서禁書를 쓰다

 

나호열

 

 

 

그날 밤 나를 덮친 것은 파도였다

용궁 민박 빗장이 열리고

언덕만큼 부풀어 오른 수평선이

내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빨랫줄에 걸린 집게처럼

수평선에 걸려있던 알전구가

몸의 뒷길을 비추었다

상처가 소금꽃처럼 피어있는 뒷길은 필요없어

거칠지만 단호하게 일회용 밴드는 말을 막았다

두껍기는 하나 알맹이가 없는 책은

온통 상처를 감쌌던 일회용 밴드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아무도 읽기를 바라지 않는 나는 금서다

상처를 어루만져 줄 네가 필요하다는 말은

달콤한 만큼 거짓말이다

거짓말이 가득한 책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았던 파도는

날이 밝자 저만큼 물러가 있지 않은가

몸을 떠난 상처는 또 무엇을 그리워해야 하는지

해는 뜨기도 전에 졌다

 

 

__나호열 시집 <촉도蜀道>(2015. 시학)에서

 

 

***나호열 시인 :1953년 충남 서산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