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생각이 깊어지면/유재영

섬지기__황희순 2014. 6. 24. 17:21

 

생각이 깊어지면

 

유재영

 

 

 

1

적막이란 적막들 모두 다 갉아 먹은

 

깡마른 벌레 소리 오도독 씹히는 밤

 

내일은 적멸궁寂滅宮 앞에 열매 하나 더 붉겠다

 

 

2

생각도 깊어지면 감물이 드는갑다

 

빈 찻잔에 가라앉은 가랑잎 맑은 소리

 

닫힌 창 방긋이 열자 별빛으로 오는 소식

 

 

3

숨겨 온 흰 종아리 명아주 대궁 같은

 

손 닿으면 울 것 같아 비워둔 그 자리에

 

누구냐, 달빛 가르며 길을 내는 저 사람은

 

 

 

___유재영 시집 <느티나무 비명碑銘>에서

 

 

* 유재영 시인 : 1948년 충남 천안 출생/시집 <고욤꽃 떨어지는 소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