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싹 트는 감자/김정인

섬지기__황희순 2014. 4. 15. 15:06

싹 트는 감자

 

김정인

 

 

 

감자밭을 지나다

볼록한 밭두렁 파헤치는 손 보았네

감자알 서너 개 손바닥에 올려지는데

흙 위를 뒹구는 콩알만한 감자 씨알

햇빛에 꽃대를 세운 감자꽃과 한사코

접속을 시도하는 중이네 솟아 있는 꽃대 흔들리네

무덤에서 요람까지 천지간 경계가

겨우 한 뼘 땅속과 두어 뼘 땅 위라니

 

씨로 남지 못하는 저 감자꽃,

싹 튼 감자가 왜 독을 품어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얼굴이네

내게도 안절부절 뾰루지로 돋는

씨눈들이 있었지

슈퍼마켓 봉지 속에서 몇날 며칠

더 이상 말라비틀어질 수 없어

파랗게 싹 틔운 감자처럼 내 몸 푸르등등

촉수 세운 나날들 

 

뭉쳐 있는 내 어깻죽지 움켜잡고

등짝 뜨겁게 후려치며 지나간 그 낯모를 손,

어쩌면 알 것 같은 손,

남겨두고 싶지 않은 나날들

지금도 부엌 한 귀퉁이에서는

사다 둔 기억조차 없는 감자알

사방팔방으로 눈 틔우고 있겠네

왜, 감자는 눈이 많은 거지?

 

___김정인 시집 <누군가 잡있지 옷깃,>에서

 

 

***김정인 시인 : 본명 김정희/서울 출생, 경북 상주에서 자람/

     1999년 <현대시학> 등단/시집 <오래도록 내 안에서>(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