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왼손의그늘/우대식

섬지기__황희순 2013. 8. 27. 00:02

 

 

왼손의 그늘

 

우대식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시라

이 가을날 나의 사랑을

얼마 남지 않은 저 잔광의 빛으로

당신을 몰고 가는 일

그것이 내 연애법이다

그 몰입에 얼마나 당신이 괴로워했을 줄

모든 빛이 꺼지고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처럼

당신과 내가 어느 풀밭에 앉아 있다 하자

젓가락을 들어 당신은 내 입에 음식을 넣어준다

음식 밑에 받쳐진 당신의 왼손

그 아래로 그늘이 진다

왼손의 그늘,

지상에서 내 삶이란

당신이 만들어준 왼손의 그늘 아래에서 놀다 가는 일

놀다가 가끔 당신이 그리워 우는 일

코스모스처럼 내 등을 툭 한번 쳐보다가

돌아가는 당신의 늦은 귀가

그림자가 사라질 때

나의 연애는

파탄의 골목길

용재 오닐의 비올라 소리 같은 깊고 슬픈

당신의 오랜 귀가

 

_________<문예중앙> 2013년 가을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2013. 현대시학 작품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