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아득한 등/성태현

섬지기__황희순 2013. 8. 4. 20:41

아득한 등

 

성태현

 

 

마지막 짐을 부려놓자 등이 가렵기 시작했다

창백하게 표정 잃은 등 뒤를 돌아본다

팔을 뒤로 돌려서 손바닥을 뒤집어봐도

손가락 끝은 거기에 닿지 않는다

긁어주지 않으면 조금씩 굽어갈 잔등

어깨의 죽지뼈가 서로 맞닿아서

굳건히 다지지 않으면 서로 어긋날 척추의 중심

움푹 패인 그곳은 그늘진 사각지대다

늘 그곳이 가려운 까닭은

활짝 벌린 두 팔과 손가락의 품이 좁아서

내 몸이지만 그 깊은 복판을 감싸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팔이 길어서 서로 털을 골라주는가

손길이 닿지 못하여 아득히 눈길만 머물러 있는 곳

혼자 병원에 다녀와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밥을 짓는 아내의 등이다

석 달 만에 찾아간 고향집

냉장고에 얼려두었던 조기 새끼 몇 마리

꼼꼼히 챙기시는 늙은 어머니의 굽은 등이다

구부정하게 집에 들렀다가 서둘러

고시원으로 돌아가는 서른한 살, 내 아이의 등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조차 전하지 못하는

먼 산굽이 너머 내 형제들의 등이다 그곳은,

 

밋밋하게 흘러내려 허전한 어깨

한순간 낡은 죽지마저 놓아버리고 싶은 저녁 무렵에

슬그머니 다가가 활짝 펼치고 싶은 등이다

 

_____성태현 시집 "대칭과 타협의 접점"(2013, 詩와에세이)에서

 

성태현 시인 : 충남 서산에서 출생/2008 <시에>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