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저 등/김윤
섬지기__황희순
2013. 5. 1. 10:51
저 등
김 윤
저 사람, 등으로 말 거는 것 봤니?
다친 등뼈 한 마디, 들판 하나를 품고 울림통이 되는 것
미추쯤에서 목쇤 소리 휘돌아 감는 것 들었니?
질척이는 골목길 폐쇄회로 카메라 속에 잠긴 늙은 느티같이 어둔
등판 가득 소리를 으깨며 젖어있는 뼈들
디스크마다 우물 하나씩을 감추고 부서진 기억들 첨벙거리는 소리 들었니?
식구들이 잠든 캄캄한 방 앞에 저 사람 우두커니 서있는 것 봤니?
어둠 속 솜같이 젖은 허파를 상한 등으로 바라보다가
낡은 모니터가 물속처럼 얼굴을 비출 때
손바닥 가득 깨알 같은 글씨로 소장(訴狀)을 써 들고
어디론가 기차를 타려고 긴 줄을 서는 것
그 기차 가득
고장난 TV가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불 환히 켜고 흘러가는 것 봤니?
___김윤 시집 <<전혀 다른 아침>>(천년의 시작, 2013.)에서
___김윤 시인 : 전주 출생.1998년 <현대시학> 등단/시집 <지붕 위를 걷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