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물푸레나무/박정원

섬지기__황희순 2011. 4. 12. 22:35

물푸레나무

 

박정원

 

 

사랑이여

그대가 물푸레나무인 줄 몰랐다

물푸레라고 숨죽여 읊조리면

그대 우러르는 먼 산이

시 한 편 들려주고

돌아보는 뒷모습이

그림 한 장 남겨줬다

물푸레나무 아래서

이 나무가 무슨 나무냐고 물었듯이

사랑이여

나는 그대가 사랑인 줄 몰랐다

웃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치어다볼 때마다

정강뼈 아래 물빛을 온통

물푸레로 물들이던

사랑이여

물푸레 옆에서 물푸레를 몰랐다

점점 내가 물푸레로 번져가는 것을 몰랐다

물푸레 물푸레 되뇌기만 하면서

맑은 물 한 종지 건네는 그대를

알아보지 못했다

 

---박정원 시집  <뼈 없는 뼈>에서

 

***박정원 시인 : 충남 금산 출생/1998년 <시문학> 등단/시집 <꽃은 피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