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네/정숙자

섬지기__황희순 2010. 6. 25. 20:27

나는 죽음을 맛보았다네

 

정숙자

 

 

죽음은 맛볼 것이 아니라

한번에 덥석 먹어야 하는 것이었네

죽음의 맛을 반추하는 건

히히히힘든 일이네

그 순간의 기억과 허무에 싸여

무얼 계획하고 싶지도 않네

느닷없는 교통사고는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예예예예예고도 없이 언제든 다시

내 목을 끊어버릴 수가 있다네

지금도 뉴스를 틀면

'죽었다'는 소식이 판치지 않나

나는 죽음 곁에 살고 있었네

나는 죽음을 방관했지만

죽음은 죽 나를 지켜봤던 것이네

게다가 날 놀리기까지 했던 것이네

 

___(<애지> 2010, 여름호에서>

 

 

*정숙자 :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 등/산문집 <밝은음자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