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읽기·책읽기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윤영숙

섬지기__황희순 2010. 5. 5. 21:19

지구에서 1Cm 떨어진 사내

 

윤영숙

 

 

신문 한 뭉치 옆구리에 끼고

몇 걸음 앞서 돌계단 오르는 저 사내

구두 뒤꿈치가 움푹 파였다

한 계단 두 계단 발걸음 옮길 때마다

제 살 깎아내느라 힘깨나 쏟았을

구두 뒷바닥, 허방이 체중을 받아 안는다

어느 광포한 시간의 이빨에 뜯겼을까

1Cm 들린 채 떠가고 있다

구두는 절개지 돌계단을 접었다 펴며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른다

푸른 지폐 몇 장 들이밀며

일 년 무료 신문구독권을 권해 보지만

중천인데 마수걸이도 없다

구두 뒤꿈치 허방이 힐끗 내게 눈짓을 한다

이제 그만 따라오라는 것일까

저 非메이커 구두도

지구에서 사는 법 익히느라 헛심 뺄 때마다

등뼈 곧추세웠을 것이다

푹푹 꺼지는 중심 받아 안으려고

가랑이진 종아리 근육을 바짝 조였을 것이다

바닥을 치고도 메워지지 않는 허무의 틈새

사라진 1Cm,

사내가 공중부양하듯 떠있다

 

---<현대시학 2010. 5.>

 

***윤영숙 : 2007년 <애지> 등단